삶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 별이
삶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
도구 혹은 호구
고통스럽던 2월이 끝났다. '끝났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많은 일과 많은 말들이 남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랑하는 일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내 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말하면서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존재가 되거나, 아무렇게나 대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도구가 되어 일하거나. 자, 이제 어떻게 할래? 네가 어서 선택해 봐.
피할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 나의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그나마 나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나 또한 버텨보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버티고 있는 나를 보며 내 친구들은 나를 대신해서 울었다. 나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위해 기꺼이 분노했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들의 눈빛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에게 덜 나쁜 것을 주지 말고, 나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주자.
나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아무리 말해도 나만 늪에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 내가 동료라 믿었던 사람들. 나를 동료로 대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 날 미쳐버리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과 상황들 사이에 더 이상 나를 놔두지 말자.
2월 한 달간 금주를 했는데, 여러모로 세상에서 가장 긴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2월의 마지막 날, 축배를 들며 친구들에게 나의 퇴사 결정 소식도 알렸다. 5년간 너무 고생했다며 또 다른 여자가 운다. 누가 보면 나 말고 당신이 일한 줄 알겠어. 웃으며 말하지만 나도 눈물을 닦는다. 목구멍을 열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켠다. 웃고 떠들며 신나게 춤을 췄다.
사랑과 용기, 그리고 존재하기
나는 내 친구들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그들은 나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생각한다. 눈빛과 말과 행동으로 사랑의 모든 것을 나에게 표현한다. 우리는 술을 나눠마시며 밤을 보내고, 헤어질 때는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하고 아쉬워서 포옹으로 인사한다.
나는 그들에게 용기를 배운다. 내가 퇴사하고 어떻게 살지 걱정하면 무심하게 고개를 쓱 돌려 말한다. "잘 살 것 같은데." 이 여자들은 얼마나 멋진지, 자신의 삶을 산다. 선택하고 결정하고 주체가 되어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내 곁에서 자신의 모양대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살아가고 있는 모습 자체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나의 방식대로 잘 존재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내가 사랑했던 일, 동료, 조직과 이별하는 과정은 아프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연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단체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도 그렇다. 처음에 반하는 순간도 있고 오래 보다 보니 단점까지 잘 알게 되는 순간, 그리고 사랑과 미움과 이해가 섞여 있는 시간을 지나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 이별하는 순간이 왔다. 헤어지는 연인에게 그러하듯, 몸담았던 단체에도 그런 마음이 든다. 그동안 내가 쏟은 마음이 아깝지 않게 잘 되길. 그렇지만 내가 더 행복할 거야 하는 다짐까지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다음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겁 많던 내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너무 상처받거나 지친 상태가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모두 페미니스트 동료이자 친구 여러분 덕분이다.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보내는 따뜻한 시간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우리는 만나고 연결될 거야. 우리는 우리의 그물망이 되어서 서로를 지켜줄 거야. 삶과 세상을 사랑하는 용기를 나눌 거야. 삶의 지침과 힘듦을 나누며 그렇게 곁에 있자.
내 곁의 웃기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에게 감사 인사와 더불어 앞으로도 잘 존재해 달라는 안부의 말을 전한다.
작가 | 별이
서른 살에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